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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병드는 사교육](3) 4살부터 영어·수학·한자까지 교육…'뇌발달·정서에 악영향'

관리자 2013-05-06 00:00:00 조회수 311

ㆍ선행학습에 흥미 저하, 스트레스·기피증 우려
ㆍ“부모들 욕심에 주입식 지식교육… 의욕 꺾을 것”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전업주부 ㄱ씨(37)는 6살 쌍둥이 남매를 집 근처 영재 아카데미에 보내고 있다. 2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다. 아카데미에선 사고력 수학과 독서, 영어·중국어·한자·과학·미술·주제토론·다문화교육·음악·체육·영재 교육까지 부모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해준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있고 과목별 선생님도 따로 있어 마치 ‘초등학교 4~6세반’처럼 운영된다.

ㄱ씨는 “영어학원 유치반은 가까운 곳에 없기도 하고 비싸서 못 보내지만 일반 유치원보다는 공부도 많이 시켜줘 선택했다”며 “아이당 월 45만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6세반이 된 뒤로는 매일 초등 수학문제집 3페이지, 국어 한 쪽씩 쓰기, 한문7급 따기 등 숙제도 내준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어차피 학교 가서 배울 것을 먼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다.

ㄱ씨처럼 정규 교육과정인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뭔가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놀이학교와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도 학부모들로부터 사교육 강사를 쓰는 특별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가르치면 좋은 효과가 나타날까.
 


■ 과목별로 인지교육에 주력하는 사교육이 창의력과 의욕 꺾어

부모들의 기대와 달리 전문가들은 영·유아 시절의 무분별한 교육은 아이를 망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초등학교에서 배울 것을 미리 배워 학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아이의 균형 있는 발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외려 기억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로 인해 유사자폐증이나 대인기피증, 학습기피증까지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 ㄱ씨 사례처럼 과목별로 나눠 가르치는 것은 결국 창의력과 의욕을 꺾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낳기도 한다.

김미화 강남구립 청담어린이집 원장은 “창의력은 통합적인 교육 속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경험으로 발달하는 것”이라며 “과목별 칸막이를 하는 순간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주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기다리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장명림 육아정책연구소 기획경영실장은 “창의력은 만 4살 전후에 거의 발달이 끝난다. 일단 구체화된 현실세계와 상징체계가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창의력은 뻗어나갈 수 없다”며 “부모들이 영어 몇 마디, 한글 몇자 읽는 것을 신기해하고 좋아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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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뇌 발달과 정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의학적으로도 여러 번 보고됐다. 서유헌 서울대의대 교수는 “과도하고 장기적인 자극은 뇌 기능을 오히려 손상시킨다”며 “만 0∼3세 아이는 감정과 정서 발달에 신경쓰는 것이, 전두엽이 빠르게 발달하는 3∼6세 때는 인간성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하루 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30%가 우울증상을 보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철희아동청소년상담센터 신철희 소장은 “요즘 부모들은 뭔가 눈에 보이는 일을 중요시해 아이들의 스케줄을 꽉 채워 빈틈을 전혀 안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속도에 맞춰 공부하게 하면 아이는 공부가 재미없고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외려 어렸을 땐 사회성 기르기나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습관처럼 그 시기에 필요한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 비취업 엄마들까지 기관 이용과 사교육을 부추기는 국가정책도 문제

영·유아 사교육의 출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게 된 데는 정부 정책의 영향도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08년 3월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생후 1년까지 1.1%로 미미하던 비취업모의 어린이집 이용률은 1년6개월 후 7.9%, 2년 후 24.8%, 2년6개월 후 44.9%로 급증했다. 김미화 원장은 “현재의 국가 정책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르게 만들고 있다. 비취업모도 시설 이용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멀어지면 결국 가정과 사회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부모가 자녀를 잘 키우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육아지원정책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연구소 조사에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2세 아이들 중 사교육 강사를 쓰는 특별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비율은 24.5%에 불과했다. 예·체능 프로그램이 많지만 영어(28.1%), 과학(2.2%), 수학(2.2%), 한글(5.2%) 등 인지교육을 시키는 비율도 높았다. 이영애 원광아동상담센터 소장은 “만 2살 이전 아이들은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도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유아기 인지발달과 사회성, 정서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